Celine Dion - My heart will go on
Mariah Carey, Toni Braxton 등과 함께
1990년대 중 후반의 팝 시장을 천하 삼분했던 Celine Dion은
디바(diva)의 정점을 대표하는 여가수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머라이어 캐리에게 밀려 만년 2등 가수의 한을 삭였던 그녀는
영화 <타이타닉>의 테마송인 'My heart will go on'을 통해 단숨에 넘버원 팝 싱어의 반열에 올랐다.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불어를 쓰는 퀘벡 지방의 작은 집에서 1968년 출생.
Celine Dion은 가족이 16명인 대식구의 막내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부모님들이 노동자 출신이었기에 물질적으로 그다지 풍요롭지 못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Celine Dion - If you asked me to
그러나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부모님의 우산 아래
Celine Dion의 음악적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싹을 맘껏 틔웠다.
5살 때부터 부모님의 피아노 바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12살 때에는 'It was only a dream'이라는 최초의 자작곡을 썼다는 등의 후일담들이 잘 증명해준다.
오빠와 어머니의 전폭적 지원 하에 상기한 곡을 테이프화(化)했던 Celine Dion.
그녀는 그것을 매니저인 Rene Angelil에게 보낸 뒤, 답변을 기다렸지만 묵묵 부답이었다.
허나 독촉 전화를 받고 그제서야 셀린 디온의 숨은 재능을 발견한 르네 앤젤릴은 그 날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고
그녀는 정식 데뷔 코스를 밟기 시작했다.
1983년 15살의 나이에 발표했던 음반 <D'Amour Ou D'Amite>을 통해
캐나다 출신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프랑스에서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고
일본에서 개최되었던 야마하 작곡 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는 등,
이후 셀린 디온의 행보는 거칠 것 없는 탄탄대로였다.
또한 그녀는 그 즈음 조우했던 베테랑 프로듀서 David Foster와의 인연 덕에
걸프 전 참전 용사들을 위한 기획 앨범 <Voices That Care>에 참여,
수많은 팝 필드의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미국 시장 진출이라는 '좁은 문'뿐인 듯 보였다.
Celine Dion - I'm alive (2002년 Divas live)
이를 위해 그녀는 우선 음악 외적인 면에서 파격적 변신을 단행했다.
팝 계의 별이 되기 위해서는 음악만큼이나 이미지 메이킹 또한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
동시에 셀린 디온은 영국의 랭귀지 스쿨에서 언어 교육을 받으며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춰나갔다.
어느새 그녀는 틴에이저에서 성숙미를 내뿜는 여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1990년에 발매했던 처녀작 <Unison>(74위)이 각각 빌보드 싱글 차트 35위와 4위를 기록한
'If there was (any other way)'와 'Where does my heart beat now'의 선전에 힘입어
꽤 괜찮은 성적표를 받았던 것. 허나 정작 그녀를 꼭지점으로 견인했던 곡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테마였던
'Beauty and the beast'였다. 차트 1위를 단박에 꿰찬 곡은
그녀에게 1992년 그래미의 팝 듀오/그룹 부문 트로피를 안겨주며 이후의 성공 시대를 예감케 했다.
또한 2집 앨범인 <Celine Dion>(1992)에도 수록되어
소포모어 징크스를 깨부수는데 일등 공신의 역할을 해주었다.
곡 외에 Diane Warren 작곡의 'If you asked me to'(4위), 'Nothing broken but my heart'(29위),
'Love can move mountains'(36위) 등이 팬들의 애정 공세를 한 몸에 받았다.
같은 해에 내놓았던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주제곡인 'When I fall in love'(23위) 역시 대박이었다.
2년 뒤인 1994년에는 셀린 디온의 인생에 있어 중대한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매니저였던 르네 앤젤릴과의 결혼이 바로 그것. 1988년부터 비밀리에 연인 관계를 유지해왔던 둘은
6년 뒤인 1994년에야 그 사실을 발표하고 몬트리올의 노틀담 성당에서 결혼, 세간을 놀라움 속에 빠뜨렸다.
정확이 배가 되는 나이차도 화제거리를 양산하기에 충분했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은 덕분인지 Celine Dion의 정상을 향한 질주는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5년 간, 무려 6장의 앨범을 녹음했다는 사실이 주는 양적 포만감부터가 남달랐다.
1993년의 <Colour of My Love>(4위)가 첫 테이프를 끊으며 Jennifer Rush의 곡을 리메이크한
'The power of love'(4주간 1위), 그리고 'Misled'(23위) 등의 히트 넘버들을 배출했다.
Celine Dion - The power of love (Live in Las Vegas 2007년)
절정의 순간은 단연코 1996년의 팝 마스터피스 <Falling Into You>였다.
현재까지 미국 내에서만 집계된 판매량이 1100만장인 작품은 그 해 그래미에서 '팝 앨범'과 '올해의 앨범',
두 개 부문을 석권하며 엄청난 위세를 떨쳤다. <업 클로즈 앤 퍼스널>의 테마송이자 다이안 워렌이 써 준
'Because you loved me'(1위)를 위시로 팝 고전을 다시 부른 'All by myself'(4위),
'It's all coming back to me mow'(2위) 등이 차트에 핵 폭탄을 마구 투하했다.
같은 해 James Cameron이 감독한 블록버스터 무비 [타이타닉]의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14주 연속 1위)은 더했다. 또 다시 그래미 두 개상을 차지하는 등,
Celine Dion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의 상황을 연출했다.
곡이 수록된 1997년의 앨범 <Let's Talk About Love>(1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두 음반의 합산 판매고가 무려 6000만장을 상회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 그녀는 실로 당대에 무적, 팝 계 최고의 디바 자리에 우뚝 섰다.
Celine Dion -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이후 Celine Dion은
베스트 컬렉션인 <All The Way: A Decade of Song>(1999, 1위)을 내놓는 등,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남편의 후두암 투병이라는 절망적 사건이 발발한 때도 이 즈음이었다.
Celine Dion에게 행복이 찾아왔던 때는 2001년이었다.
체외 수정에 성공하며 그토록 소망했던 아이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2002년, 무려 5년 만에 출시했던 정규작 <A New Day Has Come>은
발매 첫 주에 정상에 등극하며 변함없는 팬 베이스를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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