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소개

[스크랩] Abba - 1

Dove-ok 2011. 12. 28. 21:51

 

1971년 Bjorn Ulvaeus과 결혼한 Agnetha Foltskog의 첫 아이 출산 예정일은

 하필 1973년 2월 23일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출전 티켓을 따기 위한 스웨덴 본선 당일이었다.

팀 동료 Benny Anderson의 약혼녀 Anni-Frid가 부랴부랴 그녀의 노래 파트까지 연습해 만일을 대비해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 출산이 늦어져

무사히 아그네사는 무대에 올라 'Ring ring'을 부를 수 있었다.

 

 

Abba - Ring ring

 

이 네 사람의 그룹 Abba는 이날 3위에 그쳐 스웨덴 대표가 되지 못하는 고배를 마시지만

온전히 출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일이 잘 풀려 나갈 것임을 암시하는 징조였다.

그 같은 길조는 당장 이듬해에 현실로 나타났다. 마침내 'Waterloo'라는 노래로 1974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출전,

32개국 5억 TV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20대 1의 경쟁을 뚫고 당당 그랑프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Waterloo'는 순식간에 영국 및 유럽에서 밀리언 셀링 싱글이 되었다.

 

 

Abba - Waterloo

 

 

이후 Abba는 마치 천운을 타고난 그룹인 듯 쾌속 항진을 거듭했다.

영국 출신이 아니면 설령 유로비전 대회에서 우승했다 하더라도 곧 잊혀지고 마는 관례마저 운 좋게 비껴 가는

'위대한 예외'를 창조했다. 발표하는 싱글마다 차트 상위권으로 치솟아 영국 차트에서는 18주 연속 톱 10싱글을 기록했고

그중 9곡이 1위에 등극하는 눈부신 히트 퍼레이드를 펼쳤다. 이 '9곡의 넘버원' 기록은

역사상 비틀스, 엘비스 프레슬리, 클리프 리처드 셋만이 장식한 대 기록이었으며

이로써 아바는 '1970년대에 가장 레코드를 많이 판 그룹'이라는 타이틀을 안게 됐다.

 

 

 

1978년까지 4년간 아바의 레코드 판매량은 세계적으로 무려 5천3백만 장에 달했다.

1977년 연간 소득이 110억원을 기록, 스웨덴의 자랑인 볼보 자동차 회사의 총판매고 90억원을 제치고

1위 기업으로 부상할 정도였다.

 

그들의 인기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을 넘어 지구촌을 덮었다.

터키, 이스라엘에서도 음반 판매량 1위였고, 호주 사람 4명 가운데 하나가 1976년 앨범인<Abba Greatest Hits>를 갖고 있었으며, 심지어 소련의 암시장에서도 그들의 LP가 130달러의 고가(당시 LP 한 장 가격은 8달러)로 거래되었다.

 

극동 지역에서도 그 인기는 막강해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더라도

한 앨범에서 보통 4곡 이상이 방송과 다운타운가를 뒤덮었다.

1978년 <The Album>의 미국 히트 싱글은 'The name of the game' Take a chance on me' 두 곡이었지만

국내에서는 'Eagle' Move on' Thank you for the music'도 덩달아 팝송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Abba - Take a chance on me

 

Abba는 그러나 결코 운으로 먹고 산 팀은 아니었다.

그들은 대중들의 환호를 독점할 만한 충분한 재능이 있었다.

Abba의 모든 곡들은 출중한 작곡 실력을 보유한 남성 멤버 비욘과 베니가

당시 매니저이자 폴라(Polar)레코드사 사장인 Stig Anderson과 함께 썼다.

그들의 음악이 이윤의 지상 명령에 따라 팝 시장을 요리하기 위해 혈안이 된 음악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체 생산'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 했다.

 

 

 

 

베니와 비욘이 제조해 낸 Abba의 경쾌한 Bubble gum 음악'은

당시로 볼 때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자랑했다.

신시사이저와 '스트링'의 풍요로운 사운드와 종소리 같은 여성 보컬은

유서 깊은 (Phil Spector의 Wall Of Sound 방식을 따른 두드러진 부분이었다.

명랑한 리듬의 사운드 구조에 더구나 쉬운 멜로디를 화학적으로 결합시킬 줄 아는 비범한 능력을 뽐냈다.

그리하여 누구나 듣기에도 좋고 춤추기에도 안성맞춤인 곡들을 뽑아내

1970년대 초중반에 세력을 떨친 헤비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록의 시끄럽고 복잡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단순한 음악을 바라는 수요층이 폭넓게 존재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1978년 <뉴스 위크>지는 “Abba의 부패되지 않은(antiseptic)

'이지 리스닝' 사운드는 틴에이저에서부터 할머니까지 포괄하는 전 수요층에 어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물론 그들도 비판으로부터 완전 해방되지는 못했다.

 

Pat Boone의 Love letters in the sand'에 기초해 I do, I do, I do, I do'를 만든 것에서 알 수 있듯

영미의 고전적인 팝 스타일에 편승, 기술 제휴함으로써 그들의 구미에 맞추고 있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Abba - I do I do I do

 

그러나 많은 음악 관계자들은 그들이 스스로 곡을 써서,

세대와 계층을 포괄하는 작품을 만들어 냈고

또한 외로이 스칸디나비아 출신 뮤지션들의 미국 상륙(Scandinavian Invasion)을 주도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사실 비(非) 영미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영미 팝의 본고장을 정복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이 때문인지 예외 없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비슷한 계열의 버블검 그룹들 Osmonds, Carpenters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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