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 Funk - Inside lookin' out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의 역사는 60년대 미시건주의 플린트라는 지역에서 시작된다.
당시 이 지역의 인기 DJ였던 리처드 테랜스 냅(Richard Terrance Knapp,
나중에 자신의 이름을 Terry Knight으로 바꾼다.)은 방송일에 실증을 느낀 나머지 직접 음악활동에 뛰어들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곧 ‘The Jazz Masters’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였는데,
라인업은 Don Brewer(드럼), Al Pippins(기타), Bob Caldwell(키보드), Herman Jackson(베이스)이었다.
얼마 후, 밴드는 다시 “The Pack”으로 개명을 한다.
1년 후 이 밴드는 많은 추종세력을 확보하게 되며
원 밴드명인 ‘The Pack’보다는 ‘Terry Knight And The Pack’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다.
그럴 즈음, 허맨 잭슨이 밴드를 탈퇴하는 사태가 벌어지는데,
그의 자리를 Mark Farner가 대신한다. 68년 의기투합에 성공한 마크와 돈은
‘Terry Knight And The Pack’을 탈퇴한다.
Grand Funk - The loco-motion
이 둘은 자신들의 되 독자적인 밴드를 만들어 보기로 결정하고
베이시스트 Mel Schacher를 영입한다.
3인조가 된 이들은 밴드명을 미시건주의 경계표 ‘The Grand Trunk Railroad’을 패러디하여
‘Grand Funk Railroad’로 확정지었으며 테리 나잇은 이 새로운 밴드의 매니저역을 맡게 된다.
69년 7월 4일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는
‘Atlanta Pop Festival’을 통해 역사적인 데뷔무대를 갖는다.
폭발적인 연주와 무대매너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낸 이들은 캐피탈(Capital)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었으며
69년에 발표한 데뷔작 [On Time]을 백만 장 이상 팔아치웠다.
70년에 이르러서는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는
일약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링 밴드가 되었으며
71년에는 세어(Shea)스태디움에서 비틀즈가 기록했던 관객동원 기록을 갱신하는 등
이들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Grand Funk - We're an American band
그러나 탄탄대로를 걷던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에게도 시련이 닥쳤는데
그것은 [E Pluribus Funk]의 레코딩 도중, 그 동안 밴드와 갈등을 빚어왔던 매니저 테리 나잇이
앤디 카발리에레(Andy Cavaliere)로 전격 교체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는 2년여 동안 밴드명과 로열티에 대한
소송문제로 테리 나잇과 법정투쟁을 벌이는 등 진통을 겪는다.
이 기간도중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는 앨범 [Phoenix]의 레코딩을 하게 되며
‘Fabulous Pack’ 출신의 키보디스트 크래이그 프로스트(Craig Frost)를 영입한다.
비록 정식멤버의 자격은 아니었으나 그의 가세는 밴드의 사운드에 주요변수로 작용한다.
이후 발표된 두 장의 앨범 [We’re An American Band]와
[Shinin’ On]은 토드 런그렌(Todd Rundgren)이 프로듀스했으며
AM라디오의 공중파를 타며 탑 40 히트를 기록한다.
Grand Funk - Shine on
그러나, 그룹 키스(Kiss)와 쓰리 도그 나잇(Three Dog Night)의 프로듀서로 활동한 바 있던
지미 레너(Jimmy Lenner)가 프로듀스를 맡았던 이후의 앨범들은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의 열기는 하향곡선을 그린다.
인기만회에 실패한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는
결국 앨범 [Born To Die]를 끝으로 해산을 결정한다.
한편, 이들은 MCA 레코드를 통해 한 장의 앨범을 더 공개하는데
타이틀은 [Good Singin’ Good Playin’]이었다.
이 앨범은 프랭크 자파(Frank Zappa)에 의해 프로듀스되었으며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팬들로부터 최고의 앨범이라는 평가를 얻어내기도 했다.
Grand Funk - Heartbreaker
밴드의 해산 이후, 마크 파너는 두 장의 솔로앨범을 내놓았으며
돈 브로워와 멜 새커 그리고 크래이그 프로스트는 ‘Flint’라는 밴드를 결성해 밴드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80년대에 접어들어 마크와 돈은
‘Flint”의 멤버였던 베이시스트 데니스 벨링거(Dennis Bellinger)와 함께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를 재결성하기로 결정한다.
새롭게 재편성된 이들은
‘워너 브러더스(Warner Brothers)’ 레코드사의 산하 레이블 ‘풀 문(Full Moon)’으로부터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지만 팬들로부터는 냉담한 반응뿐이었다.
결국 마크 파너는 다시 솔로활동을 벌이게되고
돈 브로워는 크레이그 프로스트가 가입해 있던 밥 시거스 실버 불릿 밴드(Bob Seger’s Silver Bullet Band)에 합류한다.
한편, 마크 파너는 95년도에
링고 스타(Ringo Starr)의 올 스타 밴드(All Starr Band)로부터 가입요청을 받기도 했다.
이후,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의 오리지널 멤버인
마크, 돈, 멜은 사이드맨 하워드 에디 주니어(Howard Eddy Jr)와 같이 팀을 이뤄
‘Reunion’ 컨서트를 벌이게 되는데 이것은 곧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의 재결합으로 이어진다.
링고 스타의 프로모션하에 다시 탄생한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는
97년 보스니아(Bosnia) 자선 컨서트에 참여했으며 더블 라이브앨범 [Bosnia]를 공개하면서
옛 영광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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